이름이라는 것은 그 이름으로 지칭되는 존재를 대신한다. 이름이 존재 자체는 아니지만, 그 존재와 관계하기 위해서 이름은 언제나 필요하다. 아직 이름이 없는 존재는 관계가 설정되지 않은 그것이지만,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관계가 시작된다. 이러한 사실을 시인 김춘수는 다음과 같이 멋지게 표현한 바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부끄럽게 하지 못 한다.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나 서로 호감을 갖거나 관계를 형성하기 원할 때에 서로의 이름을 교환한다. 이 기사는 현대종교 2013년 4월호의 일부입니다. 기사의 전문은 유료회원 가입 후 PDF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검색어 : 십계명 재해석 하기 관련기사 [ 논단 ] 하나님을 우상 안에 가둘 수 없다[ 논단 ] 십계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은혜의 결과다[ 논단 ]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신을 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