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구 박사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의사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뉴스타트, 엔돌핀 등 건강세미나로 이름을 알렸다. 1982년 미국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에 입교했고, 구원론, 조사심판 등의 교리가 맞지 않음을 깨닫고 2018년 「미주중앙일보」를 통해 공개적으로 탈퇴를 선언했다. 현재 이상구 박사는 뉴스타트센터를 운영하며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제거해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편집자 주]40년 전, 초신자 이상구는 당당하게 안식일 교인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마5:17) 그리고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마5:18)라고 하신 말씀을 본 순간, “아! 내가 속았구나! 율법은 세상 끝날까지 절대로 폐하지 않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나는 꼭 지키는 사람이 되리라”라고 생각하였다. 그 때에 십계명대로 일곱째 날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킨다는 안식교 신도를 만나면서, “아!, 이 사람들이야말로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한 교회 사람들이구나!”라고 믿고 입교했다.주위의 교인들이 놀라서 율법주의 이단교회로 가지 말라고 간곡히 만류했다. 나는 만류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시지도 않고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데 왜 예수님이 율법을 폐했다는 거짓말을 가르치느냐고 반박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굳게 세운다(롬3:31)는 말씀으로도 반박했다. 나의 반박에 그들은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나는 굳게 결심했다. 그래 이 거짓 세상은 진리를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이단을 정통이라고 속이는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 분명하구나,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각오를 다짐했었다.그 당시에 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 율법을 지키라고 주셨으며, 그 율법을 잘 지켰는지 여부가 심판 때에 드러나기 때문에 나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율법을 절대로 폐하시지 않는 이유는 율법을 지키라고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잘 지켜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라고 주셨다고 확신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율법이란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율법이 명령이 아니라는 생각은 추호도 해보지 않았다.그런데 다음 성경 말씀을 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십계명이 명령이 아니라 언약이란다!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두 돌판이 ‘언약의 돌판’!(신9:9, 11, 신4:13)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4:13)그리고, 모세가 받은 모든 율법을 기록한 책 이름이 ‘율법서’가 아니다. ’언약서‘이다!(출24:7) 모세가 그 언약서를 읽고 희생제물(그리스도)의 피를 백성들에게 뿌렸다. 이 언약(율법)은 하나님이 아들을 피 흘리게 하셔서 죄인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이라는 뜻이었다. 신명기 5장 1절과 2절을 보아도 모세는 율법이 곧 언약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율법)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신5:1)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율법을 주시어)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신5:2)아!, 성경 전부가 약속이구나!, 그래서 구(옛)약, 신(새)약이었구나, 그런데 이 약속을 몽땅 명령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니!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을 내가 오해했구나!, 그 순간, 또 아브라함이 생각났다. 최초의 이단자 이스마엘(이슬람)을 탄생시킨 죄인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롬9:8, 9).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아들을 낳으라는 명령으로 오해하여 이스마엘이라는 이단을 탄생시켰다. 약속을 명령으로 오해한 것, 이 오해가 바로 이단이 되는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진실을 발견하게 되었다.성령을 받기 전에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율법을 명령으로 오해하여 행위로 복종하여 구원을 받으려는 이단 바리새인이 되었다. 바울이 성령을 받기 전, 바리새인 때에는 그에게 모세의 율법은 명령이었고 그 명령은 믿음보다는 행위(복종)를 요구하였고 복종하지 않으면 사망의 형벌을 주는 ‘죄와 사망의 법(롬8:2)’, 또는 ‘행위의 법(롬3:27)’이었다.그러나, 마침내 이단 사울에게 성령이 오셔서 모세의 율법이 더 이상 명령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주시겠다는 약속임을 알게 하셨고 그 약속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성령으로 주셨다. 이 진리를 깨달은 바울이 일생 동안 명령이라고 오해했던 모세의 율법, 곧 ‘죄와 사망의 법’이 이제는 ‘생명의 성령의 법’(롬8:2), 또는 ‘믿음의 법’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주신 것은 죄가 많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주셨고, 죄가 너무나도 많은 죄인임을 깨달은 자에게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여 구원하시리라(롬5:20)고 감격하여 외친 것이다.갈라디아 교인들이 이단에 빠진 이유도 모세의 율법을 명령이라고 가르친 유대인들에게 속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이상구도 아브라함, 바울, 갈라디아 사람들과 다 같은 이유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에 이단에 빠졌던 것이다.안식일 계명도 언약이라고 모세는 기록하였다(출31:16). 죄로 말미암아 안식이 없는 죄인들에게 진정한 안식은 십자가의 구원밖에는 없다. 십자가의 날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날들 중에 가장 완전한 날(제 7일 - 완전수)이다. 그러므로 넷째 계명도 때가 차매(갈4:4) 아들을 보내시어 죄로부터 정하신 날에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미 지키셨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히4:3).설령 모세의 율법이 정말로 명령이라고 치더라도 그 누구도 그 명령을 지킬 수 없다. 모든 율법들 중에 하나라도 못 지키면 모든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모세의 율법 중에 강력한 명령은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이것이 정말로 명령이라면 아무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다음 율법을 보면,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레20:8)” 위의 두 율법의 말씀을 종합하면,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하는데 거룩하게 되는 길은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칭의를 받게 하고 재림 때에 부활시켜 천사와 동등한(눅20:36) ‘새로운 피조물’로 너희를 재창조해 주어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게 해 줄 것을 약속한다(마5:48) 부디 내 아들의 새 언약(약속)을 믿는 믿음을 지키라, 그 믿음을 방패 삼아 죄와 담대하게 싸우라, 끝까지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을 마음속에 간직하도록 내가 성령으로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너희가 거룩하지 않으면 너희를 심판할 것이라는 명령의 율법이 아니다. 이 놀라운, 거룩하고 의로운 약속으로서의 율법(롬7:12), 그것이 약속이든 명령이든, 무엇이든 간에 거룩하지 않은 인간은 복종할 수도 없고, 그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인간이 행할 수도 없다.위의 레위기 19장 2절, 20장 8절을 보면 우리가 철저히 죄인이기 때문에(롬3:10)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그 길은 오직 약속하신 아들, 그리스도의 은혜의 품으로 달려가 믿음으로 안기는 길밖에는 진리와 생명을 찾는 길은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도 요한은,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율법을 모세를 통하여 모든 죄인들에게 주시어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시다가 마침내 율법에서 약속하셨던 은혜와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을 지키러 오신 것을 목격하고 사도 요한은 너무나 감격하여 다음과 같이 외쳤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7)사도 바울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며 40년(?)을 보내었기에 그토록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동한 것처럼, 필자도 안식일 교회에 40년을 있었기에, 이토록 바울과 함께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을 올바로 깨닫게 해주시어 이단으로부터 구원해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리며, 그 40년이 이처럼 놀라운 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