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밀러의 재림운동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의 독특한 교리인 조사심판의 형성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안식교에 따르면 조사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하늘에서 이뤄지는 심판과정을 의미한다. 각 개인의 삶을 조사해 구원받은 자들을 결정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안식교의 주장이다.밀러의 재림운동안식교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인물로 믿고 있는 엘렌 G. 화잇의 『각 시대의 대쟁투(하)』는 밀러의 재림운동에 대해 저술하고 있다. 밀러는 다니엘 8장 14절에서 ‘이천삼백 주야’에 대해 하루를 1년의 상징으로 보고 재림날짜를 계산했다.
그 날짜는 1844년이었다. 확신을 가진 밀러와 동역자들은 전도를 시작한다. 재림 기별에 대한 설교에 대해 도시별로 수십 명, 수백 명이 회개했다고 책은 기록하고 있다. 『각 시대의 대쟁투(하)』는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은 처음에 2300일이 1844년 봄에 끝날 것으로 믿었으나, 그 예언은 그해 가을에 마칠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고 써 있다.
재림 예언과 대실망하지만 1844년 봄에도, 가을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예언했던 3월도, 이후 밀러주의자들이 재림을 기대하고 계산했던 10월 22일에도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실망했고 상당수가 재림운동을 포기하게 된다. 일부는 원래 교회로 돌아갔다. 기독교 신앙 자체를 버린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각 시대의 대쟁투(하)』는 “혹독한 시련으로 많은 사람이 신앙을 버릴지라도 확고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대실망 이후 일부 신도들은 성경을 다시 연구해 그들의 이해를 새롭게 정립하기 시작하면서 대실망 사건은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안식교가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안식교와 조사심판이후 밀러주의자들은 성경을 다시 연구하며 새로운 해석을 찾기 시작했다. 재림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하이럼 에드슨, O. R. L 크로지어, 프랭클린 B. 한 등이 있었다. 이들은 1844년 10월 22일 예수가 지상에 재림한 것이 아니라, 하늘성소에서 새로운 단계의 사역을 시작했다고 깨달았다. 시간 계산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장소가 잘못 특정됐다는 의미였다.엘렌 G. 화잇의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안식교 자료들을 살펴보면 초기 교리 형성 과정에서 화잇의 역할은 ‘시작’ 보다는 ‘확증’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의 환상을 근거로 크로지어가 성소 정결에 관한 ‘참된 빛’을 가졌다고 지지했으며, 저술을 통해 이 교리를 명확히 하고 이해를 돕는 역할을 했다. 화잇의 글들에는 조사심판이 단지 심판의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중보와 구원의 계획을 포함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안식교는 화잇의 저술과 초기 지도자들의 연구를 통해 조사심판 교리를 발전시켜 왔으며 오늘날에도 중요한 신학적 기초로 남아 있다. 안식교는 그녀의 저서들을 성경 다음으로 신뢰하고 있고 일부 탈퇴자들은 화잇의 글을 인용하지 않은 설교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실패했던 재림 예언이 재해석을 통해 교리적 토대를 마련했고, 훗날 안식교의 독특한 종말론을 구성하는 핵심교리로 자리 잡았다.예언은 빗나갔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회개나 반성이 아닌 조사심판이라는 교리가 만들어졌다. 1844년처럼 시간을 특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이 교리를 바탕으로 잘못된 종말론을 가르치고 있다.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시간을 계산하려고 한 참람한 일의 결과다.-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