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수사와 비유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 효과적인 표현 방법이 필요하다. 비유는 그러한 수사법들 중에 하나이다. 비유는 사물이나 생각을 그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서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비유법(譬喩法)은 직유법(直喩法), 은유법(隱喩法), 의인법(擬人法), 활유법(活喩法), 풍유법(諷喩法), 환유법(換喩法), 제유법(提喩法), 의성법(擬聲法), 의태법(擬態法)등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을 포괄한다.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런 표현 방법이 성경만의 독특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요, 비유 해석에 어떤 일반적인 원칙이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비유와 비사우리말 성경 개역판에서는 비유(譬喩)라는 말과 더불어 비사(比辭)라는 말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1) 여기서 비유든 비사든 비유할 비(譬) 혹은 견줄 비(比) 자를 사용하며, 숨길 비(秘)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것이 본래 특정 교주에게만 보여주기로 작정한 무슨 이상한 비밀이 아니라는 것이다.비유(파라볼레)와 알레고리예수님은 직유나 은유 같은 방법도 많이 사용하셨지만2) 하나님 나라(천국)에 대하여 가르치기 위하여 많은 비유(파라볼레)를 동원하셨다. 파라볼레는 표면적으로는 자연적이며 일상적인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 표면적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예를 들어, 씨뿌리는 자의 비유라든지 겨자씨 비유 같은 이야기들의 표면적 의미는 매우 쉽고 평범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말씀하시려는 천국 복음과 관련된 의미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시기 전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의미를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마13:18-23).그것은 성경에 그대로 나타나 있으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는 무슨 봉인된 신기한 비밀이 아니다. 그 의미는 무슨 특별한 계시를 받는다는 신천지 이단의 교주가 와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비유풀이가 신기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보이도록 조작했기 때문이다.비유와 관련된 또 하나의 표현 방법은 풍유(諷諭)혹은 알레고리이다.3) 알레고리는 하나의 단어, 그림 혹은 이야기로 표현되는데, 그 안에 등장인물이나 사건들이 어떤 도덕이나 종교적 교훈 혹은 정치적 풍자를 나타내는 표현 방식이다. 알레고리는 대개 비교의 대상들 사이에 아무런 유사성이 없어 보이는데, 종종 상징을 사용하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등 표면적으로 부자연스럽거나 우스운 이야기로 표현되기도 한다.알레고리는 종종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현실 세계의 어떤 사물과 대응시킨다. 비유와 알레고리는 대체로 구분이 가능하지만, 알레고리가 그냥 비유의 범주에 포함되기도 한다. 성경에서도 비유 이야기 속에 알레고리적인 요소들이 포함되는 경우들도 있다.4) 문제는 어떤 이단들이 본래 알레고리가 아닌 것을 억지로 알레고리화 하거나, 알레고리의 범위를 본래 의도된 범위를 넘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경의 본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하게 된다.비유와 상징상징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물을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것 또는 그렇게 나타낸 표지, 기호, 물건 따위를 가리킨다.5) 비유는 종종 유사성 있는 단어나 사물 혹은 하나의 이야기로 묘사되지만, 상징은 어떤 규정된 의미를 곧바로 다른 사물에 빗대어 나타낸다. 흔히 이러한 상징은 사회적 제도나 규칙 혹은 문화적 관습에 따라 이루어진다.예를 들어, 태극기가 한국을 상징하고, 신호등이 교통법규를 상징하며, 하트 표시가 사랑을 나타내는 것 등이다. 대개 어떤 사회나 문화권에는 거기서 통용되는 상징들의 체계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상징체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제도나 규칙 혹은 문화적 관습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상징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이는 성경해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천지 같은 이단은 그러한 상징체계를 무시하고 어떤 상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거나 알레고리를 조작하여, 자신들이 마치 감추어져 있던 신비한 비밀을 풀어낸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것은 거짓에 불과하다.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나오는 144,000명이라는 숫자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충만한 수를 가리키는 하나의 상징인데, 이것이 신천지에 가입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제한된 사람들을 의미하지 않는다.6)비유의 의미 범위비유는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에 범위와 한계가 있다. 비유는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들 사이에 유사한 점이나 유추가 가능한 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비교되는 양자의 관계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 아니기에 서로 다른 점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유사성을 넘어서서 다른 점까지 억지로 침범하면 비유는 괴상한 이야기가 된다.예를 들면,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에 비유하셨다(요10:7-10). 그런데 곧 이어서 다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비유하셨다(요10:11-18). 예수님을 통해서만 정당하게 구원의 울타리에 들어간다는 의미에서는 “문”이라는 비유가 적절하지만, 예수께서 양들을 위해 자기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는 의미에서는 “선한 목자”라는 비유가 적절하다. 그런 의미 범위를 함부로 넘어가면 안 된다.이 세상의 목자들이 양을 기르는 이유는 양에게서 양젖과 털을 얻고 결국에는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가죽을 얻기 위함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잘 돌보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를 잡아먹고 우리의 가죽을 벗겨 가신다고 잘못 해석하면 괴상한 이야기가 된다.어떤 비유의 의미의 범위나 초점은 그 비유를 말하는 문맥이나 상황 및 핵심주제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것에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친히 가르치신 비유의 핵심적 의미가 중요하다.예를 들면, 마태복음 13장 3-9절에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천국 복음의 말씀이요, 네 가지 ‘밭’은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마음을 가리키는데 이는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내용이다(마13:18-23). 신천지의 비유풀이의 문제는 이 범위와 초점을 자기들 마음대로 무시하고 억지로 이상한 알레고리를 조작하여 공식화한다는 점이다.7) 그런 공식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일 수 있고 무슨 비밀을 발견한 것 같지만, 이는 예수님이 친히 가르치신 의미와도 맞지 않고, 비유가 등장하는 문맥을 벗어나는 엉터리 해석이다.문제는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어떤 비유가 본래 의도하지 않았던 교훈을 가르치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 그 세세한 부분들을 억지로 알레고리화 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예레미야 31장 27-28절에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앞뒤 문맥 속에서 이 말씀을 보면, 이는 멸망 당한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예언이다.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과 짐승이 식물의 씨처럼 뿌려져서 다시 번성하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그런데 신천지는 어이없게도 여기서 ‘사람의 씨’는 자신들이고, ‘짐승의 씨’는 전통 기독교라고 알레고리화 하면서, 이를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가라지의 비유와 연관지어 ‘사람의 씨’는 ‘좋은 씨’요 ‘짐승의 씨’는 ‘가라지’라고 하여, 선과 악으로 나눈다.그러나 이는 예레미야 13장 말씀의 본래 의미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것과 가라지 비유를 연관 짓는 것은 문맥상의 근거나 역사적 문화적 타당성이 전혀 없다. 그런 해석은 그냥 엉터리요 조작이다. 그들이 그런 식의 엉터리 비유풀이를 하는 목적은 결국 그런 비유의 비밀을 밝히고 진리를 (사실은 조작된 엉터리 교리를) 밝혀 구원할 자는 새로운 보혜사인 이만희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성경에는 역사, 이야기, 예언, 시, 지혜의 말들, 서간문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이 포함되어 있고, 그 표현도 문자적 의미를 존중해야 할 것과 비유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 신천지는 예언을 비유로 풀어야 한다고 하면서 조작된 알레고리를 전파하지만, 예언도 그 문학적 표현 방식에 따라 역사적 맥락에서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도 있고,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도 있다.우리는 문자적 의미는 문자적으로, 비유는 비유로, 상징은 상징으로 제대로 보아야 하며, 비유를 해석할 때는 그 문맥과 상황 속에서, 특히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그 본래의 의미 범위를 올바르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_______1)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 ‘마샬’이라는 단어가 우리말 개역성경에서 때로는 비유(시49:4, 78:2), 때로는 잠언(잠1:6), 때로는 비사(譬詞, 욥27:1, 욥29:1)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들 사이에 엄격한 구분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개역성경에서 비유라는 말은 대개 헬라어 ‘파라볼레’의 번역어인데, 비사(比辭)라는 말은 헬라어 ‘파로이미아’라는 다른 단어의 번역어이다(요10:6, 16:25, 29). 그러나 파라볼레 역시 다양한 의미를 가지므로, 그 의미를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개역개정판 성경은 비사라는 번역어를 모두 비유라는 말로 바꾸었다.
2) “~와 같다”는 표현으로(직유) ‘호모이오스’라는 말도 사용되고(마11:16-17, 마13:33), ‘호스페르라’는 말도 사용된다(마25:14). 은유의 예는 “나는 선한 목자라” 같은 경우이다(요10:11).
3) 알레고리라는 용어 자체는 신약에서 단 한 번 사용되나(갈4:24), 알레고리적 장치들은 많이 나타난다.
4) 예를 들어, 가라지의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 예수 그리스도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을 각각 가리키는 알레고리이다(마13:36-39).
5) “상징,”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6) 요한계시록은 여러 가지 유대적 상징들을 사용한다. 144,000은 12×12×1000인데, 12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 144는 12×12이니, 이는 구약의 이스라엘 12 지파와 신약에서 12 사도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요(계21:12, 14), 1000은 많은 수를 의미하므로, 144,000이란 하나님의 백성의 충만하고도 완전한 수를 의미한다. 이어지는 요한계시록 7장 9절에는 세계 만국에서 나와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만국 백성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은 단지 문자적으로 144,000명에 제한되지 않는다. 이 숫자는 구원받는 백성의 제한을 의미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수의 충만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신천지는 이것을 문자적으로(계량적 숫자로) 받아들이면서도 다시 알레고리화 하여 신천지에 들어간 교인들의 제한된 숫자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본문에 대한 해석의 오류이다.
7) 이를테면, 신천지의 비유풀이 공식에서 씨는 말씀, 밭은 사람의 마음 혹은 교회, 나무는 사람, 새는 영... 이런 식이다. 그들은 이런 식의 공식을 자기들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다. 겨자씨 비유에서 겨자씨가 나중에 공중에 새들이 깃들일만한 큰 나무가 된다고 하였는데, 그들은 이 공식을 대입하여, 전통 기독교의 목자는 사탄의 영이 모이는 악한 나무요, 신천지 이만희는 선한 영이 모여드는 진리의 나무라는 식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이는 당시로서는 겨자씨같이 작아 보이는 하나님 나라가 결국은 커다란 겨자 나무처럼 크게 되리라는 겨자씨 비유의 본래적 의미를 제멋대로 왜곡하는 것이다.-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