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은 절친 이정재와의 관계에 대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고, 그저 존중만 있다”며 “기대가 없으니 사이가 안 좋아질 이유가 없다. 보통 친해지면 나한테 맞춰주길 바라지만, 우린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살아가는 방법과 생각이 한결같거나 일반적일 필요는 없는 듯하다.부흥회신년 부흥회나 사경회를 소개하는 (기독교) 언론 광고들이 눈에 많이 띈다. 코로나 때문인지 예전보다 덜하긴 하나 연초가 되면 새롭게 신앙을 다지고 영적 성장을 위한 행사가 교회마다 마련되어지곤 한다. 그중 부흥회란 이름의 집회는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례행사이다.부흥회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니 교회 회원들에게 영적 활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회심자들을 얻기 위한 집회라고 소개되어 있다. 영국의 탁월한 설교자였던 찰스 해돈 스펄전은 부흥회를 통해 많은 영적 축복을 받게 될 것이며, 회심자들이 교회에 찾아오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역사적인 부흥회는 미국의 전도자 빌리 선데이에 의해 주도된 집회였다. 그는 1880년대에 미국 야구 내셔널 리그의 외야수였으며,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 전도자였다. 1886년 어느 주일날, 빌리는 해리 먼로가 인도하는 시카고의 어느 집회에 참석했다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된다. 그 후 야구를 접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방문했던 도시마다 그의 메시지를 통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3만 명 미만의 도시에서는 전체 인구의 22%가 회심했고, 3-5만 명 도시에서 전체의 15%, 5-10만 명 도시에서는 13%, 10-50만 명의 도시는 9%, 50만 명 이상의 도시에서는 전체 인구의 4%가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부흥회로는 1907년의 평양대부흥회가 있다. 한국 기독교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손봉호 박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입국한 것 다음으로 한국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교회의 영적 각성과 전도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된 복음이 한국인의 신앙으로 뿌리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기독교가 서양인의 종교가 아니라 한국인의 신앙으로 확고하게 인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된 선교사들의 기도 모임에 참석한 캐나다 선교사 하디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한국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교만을 선교사들 앞에서 통회했다고 하며, 그의 회개를 지켜본 다른 선교사들도 동일한 죄가 자신들에게도 있음을 고백하며 회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흥 운동이 회개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도 중요하거니와, 선교사들이 한국인에 대한 자신들의 교만에 대해서 회개했다는 사실은 복음이 서양인들의 것일 뿐 아니라 한국인의 것도 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전에도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체험한 개인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교회의 공동체적 체험이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후 3.1 운동을 비롯해 수많은 기독교인이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정열을 쏟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복음과 한국이 서로 이질적이 아니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쉽게 생각하거나 아울러 쉬이 이어갈 전통도 없는 듯하다. 변질되어 딴 목적으로 열리는 집회나 부흥회가 아닌 좀 더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모임이 많아졌으면 한다.
* 부흥회와 유사한 형태로는 사경회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성경을 집중적으로 강의함으로써 신앙을 강화하고 삶을 변화시키는데 강조를 둔다. 부흥회의 말씀과 체험적 증거나 은사적 사역의 강조 대신 사경회는 전적으로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한다.파격의 변화설교는 호흡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설교자와 교인들 사이의 호흡이 중요하다는 건데 사실 언텍트 상황에서는 그 같은 호흡을 느끼기가 쉽지 않고, 설교자의 설교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어떤 형태든지 본질만 놓치지 않는다면, 도리어 새로운 감동과 은혜가 더해질 수도 있어서다.예전에 김동호 목사가 모 교회 부흥회 강사로 서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며 의아해했던 적이 있었다. 부흥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간의 선입견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봐오고 기억하는 부흥회 강사는 청중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막무가내였다. 성령의 것이라며 손짓, 발짓을 써가며 불 받으라 외쳤던(생각해보니 욕지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기도 했으나 성도들 누구 하나 기분 상해하기는커녕 강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목이 터지라고 “할렐루야”와 “아멘”을 외쳤던 순진하고 순수한 성도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 쉽게 이해할 수만은 없었던 현장이었다.그러니 차분한 말씀으로 은혜와 감동을 나누던 김 목사와 부흥회의 조합이 나름 염려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특유의 잔잔한 말씀으로 깊은 여운과 더불어 도전으로 점철된 그의 부흥회 현장을 보면서 어떤 집회이든 본질이 중요한 거지, 형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이후 그렇게 부흥회의 형식은 계속해서 바뀌어 갔다. 특정 강사의 소유가 아닌, 그리고 생각지 못한 주제들로 진행되기도 하고, 강사들은 좀 더 젊어졌으며 전문적인 내용을 소재로 한 말씀과 간증의 집회들, 아울러 3~4일 정도 진행되던 시간도 좀 더 짧게 바뀌어져 갔다.본지의 사역이 이단 대처 사역인지라 이단 강의도 부흥회로 어울릴 수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 마침 몇 교회에서 이단을 주제로(부흥회 형식으로) 사역 요청이 왔더랬다. 조금은 어색한 상황과 현장이기는 했으나 나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부흥회라고 딱히 주제가 정해져서는 안 됨을, 하나님께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단 강의로도 충분히 감동과 간증을 통해 귀한 신앙의 공유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 아울러 이단 대처의 방안까지 함께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었으니 본질을 놓치지 않고, 형식을 뛰어넘는 기쁘고 즐거운 집회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나의 부흥회(집회) 시에 읽을 것언제쯤이었던가? 사역을 진행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던 때가 두 번 있었다. 겪고 있는 가벼운 장애로 인해 강의 진행이 쉽지 않았던 상황과 또 하나는 오랫동안 쌓인 자신감이 결국 자만과 교만으로 이어져 강의 매너리즘에 빠진 일이다. 그러나 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을 믿기에 처음 것은 코로나처럼 끝날 듯 끝나진 않고 있지만 언젠간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라 확신하고 있고, 두 번째는 손양원 목사의 글 하나를 접하고는 다시금 마음 다잡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함으로 사역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다.지면의 끝자락에 ‘나의 부흥회 시에 먼저 읽을 것’이라는 손양원 목사의 글을 담는이유이다. 더불어 그 같은 마음으로 사역하기에는 애초에 무리가 될 수도 있겠으나 귀한 선배들이 감당하고 감내했을 신앙을 모두 좇지는 못한다 해도 간절한 마음과 신앙만큼은 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삶의 자그마한 지침서로, 거룩한 부담감으로 삼아 줬으면 한다. 그렇게 이단 강의든 부흥회이든, 내지는 우리 삶이든 간에 좀 더 낮아진 자세로, 변질이 아닌 새로운 변화로 한 해를 잘 살아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지능을 의뢰하고 나의 지(知)를 믿지 말 것.주님을 나타내지 않고 자기를 나타낼까 삼가 조심할 것.성경 원리를 잘 모르고 내 지식대로 거짓말하지 않게 할 것.간증 시에 침소봉대하여 거짓말 되지 않게 할 것.나도 못 행하는 것을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 것.내 한마디 말에 청중 생명의 생사 좌우 관계있음을 깊이 알고말에 조심도 열심도 충성도 다 할 것.이 한 시간 내 성경 말씀 한마디에 인령(人靈)이 생사 좌우되는 것 잘 생각해야 된다.지옥에서 끌어 올리게도 끌어 내리게도 되니까.음식과 물질에도 크게 주의할 것이니,주님 대신 받는 대접이니 대접받을 자격 있는가 살피라.배위하여 입맛에 취해 먹지 말고 일하기 위하여 먹으라.물질 선물에는 하등의 관심을 두지 말 것이라.오~ 주여! 이 한 시간에 주 앞에서 범죄 되지 말게 해 주시고사람 앞에 비 없는 구름 같이 은혜를 못 끼치고 돌아갈까 주의하게 하소서!또 내 생애 유일한 참고서는 오직 성경 66권이 되게 하고교수의 지능은 오직 기도가 되게 하소서! 아멘!늘 사람들로 치이는 버거운 삶 속에서 가까운 이들부터 기대가 아닌 존중으로 다가가는 발상의 전환을 나름, 그러나 애써 실천해보길 권면 드린다.* 이번 칼럼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작성했다. 집회 차, 유럽에 오게 되었는데 이곳 역시 한국 이단들의 활발한 활동과 더불어 교회의 영적 전쟁의 관심이 맞물려 있다. 한국 이단들의 세계화에 맞서 우리의 교회들도 거하는 곳만 말고 전 세계 각지에서 이단 대처의 지경이 좀 더 넓고, 깊게, 그리고 높게 마련될 수 있었으면 한다. 30년 만에 가장 긴 시간의 해외 사역이 될 것 같은데 잘 감당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한층 더 성장, 성숙된 모습으로 다시금 지면과 유튜브를 통해 찾아뵙도록 하겠다. 새해 더욱 영육 간 강건하시길 소망하며.-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