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혹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종말을 소망 가운데 기다린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 고난, 죽음, 부활, 재림을 세상에 선포하고, 하루하루 어그러지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정결하고 신실한 삶을 살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요구받고 있다. 종말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반면 이단 교주들은 종말을 팔아 세력 확장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단 신도들은 종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점은, 믿었던 종말이 거짓이거나 단지 사리사욕을 위한 사기극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종말론집단을 이탈하기보다는 또 다른 종말을 기다리는 이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봐야하는 것이다. 이단 교주들에게 종말은 목적이 아니라 항상 탁월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종말론은, 특정한 때의 종말을 주장하는 시한부종말론과 특정한 조건의 충족을 주장하는 조건부종말론으로 구분될 수 있다. 성경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무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고 분명히 경고하지만, 시한부종말론이 등장할 때마다 교회는 몸살을 앓아왔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명확히 구원의 조건을 밝히지만, 144,000명의 배타적 구원주장이 나올 때 마다 교회는 미혹을 경험했다.
첫째, 시한부종말론은, ‘그날이 곧 온다’고 주장하며 신도들의 맹신(盲信)을 강요한다. 한국근현대역사의 혼란기에 시한부종말론은 늘 등장해왔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상의 고통이 정해진 날에 곧 끝난다는 희망은,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하의 기독교인들에게 달콤한 유혹이었다. 고난의 시간을 살아야만 하는 동안,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기성교회 대신, 임박한 종말과 회복을 내세워 다가오는 이단들의 접근을 막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최근 시한부종말론의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하나님의교회)이다. 하나님의교회가 1988년, 1999년, 2012년의 반복적인 종말주장을 해온 것은, 최근 법원 판결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하나님의교회 설립자 안상홍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의 종말론에 영향을 받았다. 안식교의 창시자 윌리엄 밀러는 1844년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시한부종말 주장은 실패한다. 하지만 이후 안식교는 이를 재해석하면서, 1844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졌고, 그리스도가 지성소에 들어가 인류의 죄를 조사하고 심판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안식교에서 이탈한 안상홍은, 그의 저서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에서, 모세가 지성소를 지은 기간인 168일이며,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1844년에 합산하면, 2012년이 종말의 때가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2년 종말은 오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하나님의교회가 한편으로는 2012년 종말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2012년 한 해 동안 전국 29개 지역에 부동산을 매입해 대형 교회를 설립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교회 지도자들이 2012년 종말을 믿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과연 곧 종말이 오는데,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결국 시한부종말은 실패로 끝났지만, 하나님의교회는 막대한 부를 소유하게 되었다. 하나님의교회 관계자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 재산이 3~4조에 이른다고 한다. 사업을 하지도 않는 하나님의교회가 이 거액의 재산을 어떻게 모았을까? 혹시라도 여기에 시한부종말을 믿고 헌금한 신도들의 재산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시한부종말론을 통해 위기감을 조성하고, 헌금을 유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종말은 ‘판매용 사업 아이템’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적인 에너지’이다.
둘째로, 조건부종말론은, ‘그날이 오면’ 일어날 일들을 선전하면서 신도들의 맹종(盲從)을 강요한다. 요한계시록의 144,000명이 바로 자신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숫자가 144,000명에 이르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와 교회와 가정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144,000명에 속해야 한다는 어긋난 선민의식과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조건부종말론의 대표적인 사례는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다. 신천지는, 자신들의 신도수가 144,000에 이르면, 두 가지 일이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영원히 죽지 않고 육체 영생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주장이다. 육체의 영생을 얻고,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가정과 직장과 학업을 포기하고 신천지 포교에 인생을 거는 수많은 평범한 가장, 가정주부, 청년대학생들이 있다. 만약 신천지 가는 것을 막는 가족이 있다면, 심지어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포기하는 결정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144,000명 교리는 허구로 드러났다. 2016년 현재 신천지 신도들의 수가 144,000명이 초과된 것이다. 물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생을 얻었다는 증거도 없고,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는 작은 단서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144,000 교리의 변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어쨌든 144,000명만 차면된다고 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144,000명이 단순한 신도수가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들”의 숫자가 144,000이 차야한다는 주관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그리고 요즘에는 마침내 144,000이 영생의 조건이 아니라, 평화를 보장하는 국제법을 개정하고 종교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영생이 온다는 허망한 주장을 하면서, 이만희가 국내외를 다니며 소위 평화를 위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교회와 기독교기관을 찾아 시위를 하면서, 144,000 교리 실패 이후의 신도통제와 체제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신천지 신도들이 인침을 받은 증거도 없고(계 7:4), 어린 양과 시온 산에 선 것도 아니며(계 14:1), 새노래를 부를 수도 없는(계 14:3), 그저 이단종교의 피해자들이라는 것이다. 거짓은 끊임없이 또 다른 거짓을 만들어 낸다. 신천지 거짓말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궁금할 뿐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종말은 교회의 소망이다. 모든 죽은 자들과 성도의 교제를 나눈다고 신앙고백하며,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을 소망 가운데 하나님께 먼저 보낼 수 있는 것도 바로 종말과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고백하며 하루하루를, 시한부종말의 위기감이 아니라, 평범한 소망 속에 살아간다. 144,000의 완성은, 인간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