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욕이나 저주를 듣게 된다면 가만히 받아들일 이가 얼마나 될까? 반대로 누군가에게 사랑과 축복의 마음을 전할 때 그것에 반응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싶다. 공포영화를 보고 나서 잠시나마 악령의 세계에 관해 관심과 두려운 마음을 가질 수는 있겠으나 이 역시 반대로 성령의 역사나 그 마음은 얼마나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하여 소망한다. 엄한 것들로 인해 마음 복잡하거나 불편한 삶을 살지 않길, 그저 선한 것들만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귀한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인트로, 넷플리스 드라마 ‘지옥 2’인상 깊었던 드라마나 영화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흐른 작품들이 많다. 그중에 숨은 이단 찾기로 매우 흥미롭게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1’도 만난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3년이나 되었고, 최근 시즌 2로 다시 돌아왔다.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던 지옥 시리즈는 세계관이 시즌 1보다 확장되었다. 배우들의 호연은 물론이거니와 헐리우드 못지않은 특수 효과도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고, 특히 종교와 신학의 세계, 내지는 윤리나 정치 등 외연의 확장도 이전보다 두드러졌다.시즌 2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영화 ‘부산행’ 이후 다작을 찍긴 했었으나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는데 ‘지옥 1, 2’로 말미암아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처음 작품을 대할 때, 연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라는 작품이 떠오른 이유는 종교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감독이었기에 그가 표현하는 지옥은 어떨까, 하는 궁금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사이비종교라는 민감한 주제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 그는 언론을 통해 “종교와 인간의 관계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매개체”라며 “지옥이 만들어 낸 생소한 세계관에 빠져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보편적 대중보다는 이 같은 장르를 깊게 즐기는 분들이 좋아할 거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인간이 ‘죽음’이라는 것을 예상치 못하게 고지받았을 때 얼마나 잘, 또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하며 작품을 구상했다는 감독은 작품의 흥행이 아마도 ‘지옥 1’ 당시에는 코로나 시기가 한몫한 것 같다 했고, 아울러 코로나와 맞물려 여러 이단이 세상 밖에 드러나면서 대중의 마음에 더욱 각인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지옥 1이 ‘죽음과 저주’ 중심의 이야기였다면 시즌 2는 ‘부활과 구원’이라는 좀 더 복잡한 철학적 확장과 더불어 흥미와 대중성을 넘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아울러 지난 시즌보다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지점도 많아진 듯하다.평범한 시민에서 광신도로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지옥 2’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배우 문근영이 소화한 (광신도 집단)화살촉의 ‘햇살반 선생님’이라는 캐릭터였다. 평범한 시민이 극단적인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사이비종교에 심취되어 이단으로 변모하는 과정의 위태로운 모습을 제대로 담아 ‘지옥’ 시리즈의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서이다.돌변한 아내로 삶이 송두리째 뒤바뀐 그녀의 남편을 통해 그녀의 흔적은 결국 드라마 곳곳에서 광신도이자 집단 선동가의 역할로 비극을 키운다.그동안 문근영의 이미지는 국민 원조 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었다. 그 이미지와 극 중 문근영이 연기했던 이미지의 괴리를 통해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 제작진의 의도였는진 모르겠으나 데뷔 이래 가장 강렬한 캐릭터로 배역의 활용이 눈에 띈 것은 사실이다.아울러 문씨가 맡은 배역과 연기를 잘 소화해서도 그랬지만 캐릭터가 쉬이 동화되고, 동병상련으로 깊게 자리한 이유는 작금의 종교적 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아서이다.부모 말이라면 누구보다 순종했던 귀한 아들딸들이,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믿었던 가족들이 어느 순간 그릇된 종교에 심취되어 극 중 문씨가 연기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그냥 영화는 영화니까, 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고, 절묘한 캐스팅 정도로 흥미롭게 영화에 빠져들 수도 있었겠으나 드라마와 현실을 혼동한 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현실의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지는 것에 절망감과 안타까움이 사그라지질 않는다.현세의 지옥, 이단 피해그러기에 성경이 말하는 지옥과 현세에서의 지옥은 다르지 않나, 라는 생각과 질문이 어쩌면 피해자들에겐 어리석은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같은 아픔을 겪어보기 전엔 그 누구도 그 아픔과 절망을 이해할 수 없어서이다.이단 피해자 200만 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곳, 대한민국이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은 최근 계엄령 사태 등 정치에만 있지 않고, 종교적인 문제로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지옥’이라는 것이 그저 내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성경적이지 못할 수도 있는 말을 그저 불경스럽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게다. 믿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곱씹어야 할 대목이기도 하고.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는 정신분석학적인 이유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햇살반 선생님’이 시연 장면을 접한 뒤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어느새 광기 어린 화살촉이 되어 지옥 시연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며 불 속으로까지 뛰어든다.이어 그녀는 그 순간이 신과 가장 가까이 있다는 합일감, 충만감…, 당신과의 결혼생활에선 절대로 느낄 수 없는”것이라고 남편에게 말한다. 행복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남편에게 그녀는 “일상이 모두 거짓에 기반했던 것”이라며 단호히 뿌리친다. 그는 팔이 불타자 죄 사함을 받았노라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그리고 이내 다시 불 속으로 뛰어든다. 죄 사함은 끊임없이 요청되고, 신적 충만함도 끊임없이 갈구되는 순간이다. 도파민에 전 뇌가 약물을 탐닉하듯, 광신에 영육은 지옥 불을 욕망한다. 신과의 합일을 원하는 종교적 열정은 극한의 고통을 극한의 희열로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종교와 사이비종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기성 종교에서도 강, 약만 다를 뿐 그리 믿고, 그리 사는 이들이 적진 않을 게다. 현세에서의 삶을 무시한 채 내세의 구원만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의) 답을 모르는바 아니나 그럼에도 고민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아니! 삶을 사는 동안 내내 곱씹어봐야 할 신앙이고 믿음일지도 모르겠다.그리고 아팠던 또 하나의 장면은 작금의 이단 피해자들의 눈물과 다르지 않게 가족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단에 빠진 아내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남편의 마음이 극한 연기 변신을 한 배우의 이미지와 겹쳐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 것을 당장 잊긴 어려울 것 같다.회복과 치유를 소망하며아울러 최근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치의 소용돌이를 보면서 작금의 시대가 더 지옥 같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와서인지 예전 썼던 칼럼 일부를 소환하지 않을수 없다.영화에서 광신도들이 ‘새진리회’라는 단체에 반대하는 이들을 죄인이라며 폭력을 행사하고, 광기 어린 어조로 타인의 죽음을 조롱하며, 급기야 공권력조차 이들의 협조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생지옥으로 비춘 것처럼 현세에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인들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아픔과 눈물을 흘리며 사는 이들이 있다는 것,넓게는 당장 직면해 있는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와 각 나라의 전쟁들, 또한 가난과 질병의 문제들과 경제 양극화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이 그렇다.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육체, 정신적질환 등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이들이 과연 천국 등을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더불어 이단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죽고 싶다는 심정을 들을 때면 이들에게 지옥은 저 멀리에 있는 것 같진 않다. 하나 더는 매일 전해지는 이 같은 소식들에도 어떠한 충격과 고뇌 없이 무감각해져 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또 다른 지옥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과연 이러한 일들에 회복과 치유가 가능할 지, 그저 모르는 체하고 우리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건지,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여전히 겹겹이 쌓이고 고민도 깊어져만 간다. 그래도 ‘믿는 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로 주변의 기대와 시선이 고정되고 있음을 뿌리칠 수만은 없다.이것이 신앙인의 숙명이고, 소명이기에 선택의 여지도 없다. 작년에도 역시 실수와 한계투성이였던 교회 공동체가 올해는 다시금 기적의 반전을 꾀해갔으면 하며, 여러모로 부족한 본지도 이단 대처 문제 외에 주변도 돌아보며, 섬김과 나눔의 행함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사역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우리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길 바라며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번 드라마에서 두드러졌던 정부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무리하련다. 극 중 정부는 시연(괴생명체들이 예고된 시간에 나타나 고지받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후 빛으로 태워버리는 일, 시각적으로 보이는 폭행의 모습으로 인해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지옥의 공포를 느낀다)이 인간의 죄와 무관한 현상이며, 새진리회가 거짓 선동한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다.또한 새진리회의 위상이 커져 신정 국가화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론 추이를 살피며 화살촉의 부상과 이들이 다른 정치세력과 손을 잡지 않을지, 언제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할지 등을 예의주시한다. 드라마 안의 정부도 현실과 다르지 않다. 결코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것과 여러 세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들이 그렇다.작금에 터졌던(지금도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정치적 사태와 후속 사건들처럼 말이다. 이제 현실이 드라마와 맞물리고 더 나아가 미디어를 넘어선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정부와 국가의 존립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 같은 문제가 현실에서도 극대화되고 있는 것을 보니 혼란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그럼에도 극 중 청와대 정무수석은 계속되는 혼란한 상황에서도 다양한 세력을 활용해 힘의 균형을 맞추고, 최소한의 사회 질서를 구축하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는데 현실에서는 그 같은 정치인이 존재치 않는 것 같아 답답하다.그럼에도 이번 우리 국민의 성숙함과 지혜로움을 바라보며, 또한 남녀노소의 간절한 관심과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며 그나마 힘들었던 마음이 해소되었기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그렇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려운 문제를 하나둘씩 풀어가는 국민들을 보면서 그럼 이단, 사이비 같은 종교 문제는 교회와 성도들이 지혜롭게 풀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단 등의 문제가 나와(우리와) 상관없을 것 같으나 그리 멀리에 있지 않음을 늘 상기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특히나 거짓을 말하는 선한 자와 진실을 말하는 악한 자를 대비시켜 인간의 양면성을 꼬집는 세상 미디어를 지켜보며, 세상과 다르지 않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들이 이젠 아무리 진리를 외쳐도 믿지 않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과 경각심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더 나아가 가정과 교회의 문제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이웃과 세상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었으면 하며 천국과 지옥, 내지는 믿음과 신앙의 문제에 대해 세상도 이리 고민하는데 우리의 고민도 좀 더 깊어져야 할 것이다.* 위 드라마와 더불어 최근 상영 중인 <원정빌라>라는 영화도 추천한다. 역시나 사이비종교가 멀리에 있지 않고,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얼마든지 다가올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같은 작품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우리의 영적 직무유기 때문인 것만큼은 분명하지 싶다. 그리고 이왕 영화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하나 더는, 그간 영혼 구원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육신의 생명 또한 소중히 여기며 날마다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의 삶을 담은 영화를 보고 나니 영혼뿐 아니라 육신의 생명 또한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독자 제현의 영육간 강건함을 위해 기도하며….누군가 상처가 되는 말을 전한다 해도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처음이 어렵지, 생각보다 쉬운 일일 수 있으니 부디 자유하고, 상처받지 않길, 항상 선한 일들만 가득하길 바란다.-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