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진화하며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생의 문제보다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진단하고, 각 상황에 맞게 빠르게 대처, 차단하는 일이지 싶다.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1. 이제 1년이 됐다. 그간 코로나로 인해 본지를 포함해서 잡지 시장이 녹록지 않음을 여러 차례 말했더랬다. 그러나 이 어려움이 여행업만 할까 싶고, 소상공인들과 개척교회만 할까 싶다. 코로나 발생 초기의 여러 일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여행사를 운영했던 한 후배는 필자의 둘째 아이를 (런던의) 공항 셧다운 전, 가까스로 탈출(?)시킨 일이 그의 마지막 업무라고 했다.
후배는 결국 일을 접고 지방으로 내려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다고 전해왔다. 고교 동창인 한 친구는 성지순례를 중점으로 하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역시 더는 버티기 어려운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그 외 소상공인의 지푸라기조차 잡을 수 없는 참담함이야 말할 필요 없겠고, 개척교회나 미자립교회들도 더는 내려갈 곳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대형 교회들조차 ‘힘들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그곳들은 오죽할까. 그나마 감사한 것은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더 어려운 곳의 아픔과 절망을 함께 나누려고 노력하는 교회와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다. 이렇게 절망에 다다를 때야 옥석이 드러나는 건가. 섬김과 나눔으로 빛을 발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정부 정책 등을 탓하며 불만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교회들도 있다.온 국민이 코로나 블루로 지쳐 있을 때 교회가 빛이 되고, 위로와 격려가 돼야 할 텐데 해야 할 일은 접어두고, 엄한 것에만 관심을 두는 교회들을 보니 코로나보다 더 암울하기만 하다. 그래도 앞에 언급한 교회와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희망을 접기엔 아직은 이른 듯하다.✽ 1년여 동안 본지도 몇몇 교회와 동역자들의 귀한 위로와 격려로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다. 그 중 ‘베이직 교회’라는 공동체의 격려가 컸다. 그래서인지 그 이름처럼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고자 애쓰는 일이 우리에게, 그리고 다시 우리로부터 여러 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일이 백신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 같은 움직임들이 더 많은 곳에서 나타나기를 바란다.2. 여전히 강의 현장에 나서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그 공간이 그립고,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최근 집회의 추억들을 자주 떠올리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환경과 상황이 녹록지 않았던 수련회와 캠프의 경우는 늘 쉽지 않은 일들이 많았으나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였는지 더욱 간절하다.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여름엔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겨울엔 온풍기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추위에 떨며 말씀을 나누는 등 시설과 환경이 매우 열악했더랬다. 그러나 어려운 중에 진행됐던 당시 사역이 무언가 더 큰 감동과 도전이 컸던 것 같다. 때로는 장소를 구하기 어려워 폐교를 빌려, 내지는 스크린조차 마련되지 않은 교회에서 전지 몇 장 붙여놓고 선친이 물려준 슬라이드 기계로 강의를 진행하곤 했다.세월이 흘러 이제는 교회마다 최신식 예배당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없고, 음향기기와 멋진 스크린이 구비되지 않은 곳들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수련회도 잘 먹고 잘 잘 수 있는 시설들(로 가야지만 신청자 수가 는다고 한다)이 많아졌으나 예전 집회가 더 은혜롭고, 그 주제와 목적에도 걸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떼는…’을 남발한다고 뭐라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또한, 때마다 이단들이 몰려와서 집회를 방해하곤 했다.요즘 집회가 방해받는 일은 그저 음향이나 영상 시설의 불협화음 정도이니 예전에 비하면 코로나의 문제 빼고는 환경은 나아질 대로 나아졌다. 이렇게 모든 것은 좋아지고 있으나 더 많은 불만과 불평을 달고 사는 이유는 왜일까. 다른 것은 다 변해도 욕심만은 변하지 않아서이지 않나 싶다.어느 때, 어떤 상황이든 간에 ‘감사’가 사라져서 그렇기도 하고. 그래서일까. ‘늘 처음처럼’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고 배우게 되는 작금의 ‘코로나 시대’가 꼭 나쁘다고만 생각진 않는다.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감사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 많음에도 작년 한 해 참 성급히 결정을 내리고, 시시각각 불만 가득한 삶을 살아왔던 것이 후회된다. 부디 올해는 그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아울러 지긋지긋한 바이러스가 곧 멈추게 될 것은 자명한 일, 사역은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고,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오랜 기간의 학습 효과를 통해 더 센 녀석들이 오더라도 잘 막아내고,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그저 마지막 때의 우리의 믿음만 퇴색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는데 주저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의 주도로 금 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에 절하며 우상숭배를 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셨으나 모세가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했다. 그와 다르지 않은 일이 우리 삶에 팽배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은 심정으로 다시금 용서를 구하고, 바로 서고자 하는 일이 남이 아닌 우리를 통해 먼저 나타나야 할 테다.3. 그렇게 지혜롭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분께서 원하는 것에 부합된 삶을 살려고 발버둥 치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수칙과 이 땅에서 지켜야 할 수칙, 그리고 기본을 지켜가며 사는 그런 삶을 사는 것 말이다. 그간 숨는 데에 익숙했으니 이젠 당당히 드러내놓고 살되, 본지의 소명인 영적 전투에서도 수비만큼 공격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으며, 때가 때이니만큼 회복과 치유의 사역 역시 관심을 잃지 않는 한 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빌게이츠는 30여 년 전 (디지털 시대에는) 종이가 소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종이 잡지나 신문 등은 새로운 미디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바뀌는 세상에서 고민에 고민을 더한 본지의 계획들이 빛을 발하도록 먼저는 ‘첫 마음’과 ‘기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나름 2021년 본지의 노선쯤으로 여겨도 될 것 같다. 올바른 노선은 언제나 그 노선에 기본적으로 합의하는 작은 이견들의 도움으로 완성된다고 하니 지지나 응원, 내지는 합의되지 않은 이견들조차 이 일에 무관심한 것만 아니라면 모두 환영한다. 아울러 앞으로는 비대면이 필요할 때가 많을 테니 홈페이지 구축 등 온라인 사역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바이러스와 이단의 공통점은 생각보다 많다. 피해의 형태가 그렇고, 대처와 대응의 부분도 그렇다. 영전 전쟁이 하나님께서 다 이겨놓은 싸움이기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기쁜 노력이 쉴 틈 없이 이뤄지는 것처럼 육의 바이러스 역시 조금만 더 힘을 내어 싸운다면 어렵지않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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