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초 무더운 여름밤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목사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의 요점은 최근에 불거진 교단 내 유력 인사들의 성 비위가 총재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통화 끝에 최측근이었던 분으로 인정할 만한 인사의 연락처를 받았다. 며칠 후 늦은 밤에 두어 시간가량을 통화했다.음주운전 중 교통사고, 다수의 성 비위, 거액의 재정 비리 등 하늘이 무너질 듯한 말을 무덤덤하게 털어놓으셨다. 정확히 28년을 몸 담았던 단체인지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나는 물론 자녀들과 교회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이 문제는 한 사람의 일탈로 그치지 않고 측근들의 성 비위가 동시에 터져 나와 총체적 문제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이 정도라면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알았을 텐데 왜 나는 이제야 알았을까? 아니면 나만 몰랐던 걸까?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진위 파악에 나섰다. 주변의 목사들을 비롯한 지난 세월 동안 알아 왔던 목사들은 물론 내부 사정을 알 만한 분들에게 전화했다. 놀라운 사실은 내가 아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고 사실을 알고도 본인과는 무관한 일로 치부하고 외면했다는 것이다.온라인상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었던 듯하다. 약 15년 전 익명의 제보를 기사로 썼던 기자와의 통화를 통해 폭로 시도가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단적인 교리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개혁을 외쳤던 이광은 목사의 존재도 알 수 있었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것을 확인하고 이메일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아무리 정의로움으로 시작했을지라도 뭐가 문제인지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짐작했기 때문이다.다락방의 특징은 한 사람의 설교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 설교자는 20여 년 전부터 이단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는데 화려한 언변으로 순간순간을 모면해왔다. 이천 년 만의 복음이 본인으로부터 세상에 나타나니 주변의 많은 교단과 교회의 목사들이 질시하여 이단으로 누명을 씌웠다는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변형하여 반복했다.어리석게도 나를 포함한 수만 명의 사람은 그런 줄로만 알았다. 거기에 더해 한기총은 예장개혁과 손을 잡고 다락방의 이단 정죄를 해제하여 흡수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최근에야 이단 해제의 과정에 금품이 오간 정황이 있어 이젠 이단이 누명이었다는 변명도 할 수 없게 된 듯하다.온라인 카페는 익명을 앞세워 다락방의 이단성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탈퇴한 성도들의 간증(?)과 각종 도움 되는 자료들이 올라왔고 간혹 폭로성의 글들도 올라왔다. 그러던 중 본부라 여겨지는 부산의 모 교회에서 당회장과 당회원들 간의 갈등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메일이 폭로되었다. 그게 2023년에서 2024년 넘어가는 한겨울을 뜨겁게 달궜다. 그런데도 노회 목사들은 나 몰라라 하고 알 만한 분들은 뒷짐 지고 있는 상황이 지속됐다.
내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양심의 소리를 따르자니 고달픈 미래가 기다리는 것 같았고 현실에 타협하여 교회를 이끌고 조용히 떠나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온라인 카페 글에서 ‘우리는 고통 받으며 방황하는데 목사들은 어디에서 뭘 하는가’라는 내용의 글이 마음을 움직였다. 그동안 소극적으로 온라인 활동을 하던 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개인 간에 전달되던 이메일을 당시 1000여 명이던 온라인카페에 게시한 것이다. 당연히 최초의 글에 실명으로 언급된 인물은 모두 익명으로 처리하였다. 게시글에는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믿고 따랐던 지도자와 단체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바른길로 되돌리고자 한 목적임을 명시했다. 취지와는 다르게 게시물에 언급된 한 인물로부터 나를 비롯한 다수의 사람에게 고소장이 들어왔다. 형사 소송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수억대의 민사소송이 줄을 이었다.난생처음 수사관과 일대일로 마주한 자리에서 활동의 진정성과 순수성을 소상히 밝히고 객관적 자료를 제출한 결과 경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메일을 폭로하고도 별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수세에 밀리는 상황이 오자 내부의 개혁은 물론 기독교계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법에 대한 무지는 불필요한 두려움을 증폭시켜 손과 발을 꽁꽁 묶는 듯했다. 이를 이겨낼 외부의 도움이 간절했다.그러던 어느 날 대형 도서관에서 평소에 관심을 두던 인문, 사회 분야 부스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그들의 신은 누구인가?』(김시온 저). 몇 달이 지나 다시 보니 보통의 책보다는 비교적 얇은 소책자 정도의 책이 당시에는 한눈에 쏙 들어왔다. 젊은 나이에 연예인 경력에다가 JMS를 탐사 취재하고 탈퇴자를 돕는 특이한 이력이 더욱 눈에 띄었다.당장 JMS 탈퇴자들의 온라인 카페를 검색하여 쉽게 김 기자의 아이디를 찾을 수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자 놀랍게도 기다렸다는 듯이 답이 왔다. 먼저 보낸 메일을 받아 읽어보았으나 그걸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당연한 메시지도 함께 왔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5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첫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두 시간가량 의 작전 회의(?)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절반이었고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이해할 수 있었다.김시온 기자와의 만남은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던 개혁의 불씨들을 한데 모아주었다. 거의 한 달가량을 대면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굵직한 일들이 진행되었다. 5월 31일에 제보를 받는 익명의 공개 채팅방이 개설되었다. 처음엔 제보라기보다는 분노와 충격의 글들이 몇 주째 밤을 새워 이어졌다. 곧이어 대망의 오프라인 모임이 10여 명과 함께 김 기자를 접촉한 지 약 한 달 만에 성사되었고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 일정이 거의 확정되었다.드디어 CTS 뉴스에 우리의 기자회견 일정이 소개되었다. 끊임없이 신학적인 문제를 다뤄온 이광은 목사는 기자회견 시 발표할 공동성명문의 초안을 잡아주었고 이를 통해 탈퇴 목회자들은 뜻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7월 16일의 탈퇴 성명과 피해자의 호소 그리고 기자회견은 성공적이었다. 20여 건의 기사가 터져 나왔고 코람데오연대가 공식 출범하는 발판이 되었다. 물론 홍수가 터져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방주 같은 신세였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안전한 항구에 닿을 수 있게 하셨다. 신학적으로 흠잡을 수 없는 공동성명문은 하나님께서도 들으셨는지 건전한 총회에 가입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셨다.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제보는 결국 PD수첩 방송 일정이 잡히는 데까지 이르게 했다. 언제 방영된다는 것까지 비밀에 부쳐진 인터뷰 녹화는 전국에서 진행되었고 예고편이 공개되는 날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2024년 10월 22일 화요일 저녁 10시 20분 MBC PD수첩, “다락방의 타락한 목회자들”. 방송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12월인 현재에도 나비효과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나비들의 열정적인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켜 잔가지들을 쳐냈으니 폭풍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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